Chapter 1. 스펙으로 기록되지 않는 시간
대학에 다닐 때는 어떤 분야를 전공했나.
인문학. 국제지역학을 전공했다. KOTRA(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와 같이 무역과 관련된 공기업에 가고 싶어서 2년 정도 준비했다.
2년은 꽤 긴 시간이다.
그렇다. 공기업을 준비의 가장 큰 문제점이 뭔지 아나. 공기업에 붙지 않으면 남는 게 없다는 거다. 시간이 길어질수록 불안도 비례해서 커지더라. 그나마 행정직과 전산직을 모두 준비해 합격 가능성을 좀 더 높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불안이 줄어드는 건 아니었다.
행정직과 전산직 준비를 같이 하는 경우는 드물지 않나.
취업 준비 기간에 아버지의 업무를 좀 도와드리면서 자연스럽게 코딩을 알게 됐다. 직접 코딩을 한 것은 아니고 웹 페이지의 기능을 검토하는 QA 일을 도왔다. 기능 구현이 왜 안 됐는지 이유를 듣다 보니 이 분야에 대한 마음의 장벽이 낮아지더라. 당시에는 오직 공기업에 가야한다는 생각뿐 어떤 직무든 상관없었다.
전산직으로는 비전공자이다 보니 새로운 스펙이 필요했겠다.
그래서 한 공공기관에서 진행하는 빅데이터 교육 과정을 수료했다. 교육을 받고 인턴으로 근무하며 공공 빅데이터를 활용하는 과정이었다. 파이썬, SQL 등을 배웠고 데이터를 활용해 의미있는 결과를 얻어내는 일을 했다. 그런데 여기서 새로운 가능성이 보이더라.
어떤 가능성이 보였나.
인턴 과제에 필요한 데이터를 얻기 위해서는 기관의 DB 관리자에게 데이터를 요청하고, 요청을 받은 DB 관리자가 우리가 원하는 형식에 맞춰 SQL로 데이터를 뽑아 줄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그런데 그 기관에는 SQL문으로 데이터를 조회할 수 있는 사람이 한 명뿐이었다. 상상해봐라, 이렇게 큰 기관에 데이터를 줄 수 있는 사람이 한 명이니 얼마나 병목이 생겼겠나. 어떤 직무로 취직하든 SQL로 직접 데이터를 뽑을 수 있으면 쓸모가 있을 것 같더라.
이 즈음 ‘쓸모’라는 단어가 머릿속에 콱 박혔는데, 그 이후로는 공기업 공부를 할 수가 없더라. 아무리 따져봐도 합격하지 않으면 쓸모가 없는 공부였다. 더 이상은 버려질지도 모르는 시간을 안고 살 수가 없었다. 공기업 공부를 포기하고, 어떤 공부를 하든 쓸모가 있는 걸 하기로 다짐했다. 그렇게 코딩 공부를 시작했다.
Chapter 2. 자격증 +1 = 스펙 +1
코딩 공부는 어떻게 시작했나.
국비지원으로 데이터 사이언티스트 교육과정을 수강했다. 6개월간 진행되는 부트캠프였다. 빠르게 자격증을 따고 싶어 동시에 스파르타코딩클럽의 강의도 함께 수강했다. 이론 수업 위주로 진행돼 어렵고 재미가 없었는데, 스파르타코딩클럽의 강의는 실습 위주라 이해가 쉽더라. 부족한 부분을 메우는 퍼즐처럼 만족스러웠다.
강의를 두 군데서나 수강하다니 열정이 대단하다.
당시에는 자격증을 빨리 따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자격증은 시험이 몇 개월에 한 번씩 있지 않나. 이미 잃어버린 시간이 많은데 또 몇 개월을 잃어버릴 수 없었다. 오프라인 강의에서 부족한 부분은 온라인 강의를 추가로 수강해서라도 채워야 했다. 이렇게 하다보니 결국 SQLD, ADsP(데이터분석준전문가), 빅데이터 분석 기사를 땄다.
자격증 시험 준비가 어렵지는 않았나.
당연히 어려웠다. 그중에서도 빅데이터 분석 기사가 제일 어려워서 두 번 정도 탈락한 뒤에 합격했다.
다양한 공부 방법 중에서 자격증을 택한 이유가 있나.
비전공자가 실력을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이 딱히 없더라. 가장 효율적인 자격 증명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결국 짧은 기간에 원하던 자격증을 따는 데 성공했다. 코딩 공부가 잘 맞았나 보다.
재밌었다. 아버지의 업무를 도와주며 자연스레 코딩에 노출되서 그런지 잘하는 편이었다. 부트캠프에서 배울 때도 묻기보다는 알려주는 쪽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 재미를 좀 더 만끽할 수도 있었을 텐데, 당시에는 재미를 누릴 여유가 없었다. 그래도 못 하는 편이 아니라 다행이라는 생각까지 밖에 못했던 것 같다.
취업 과정은 어땠나.
고향인 부산에서 일하고 싶었지만 주로 경력직만 뽑더라. 서울이라고 취직이 쉬운 건 아니었다. 엄청 많이 지원했는데 네 군데에서 면접을 보자는 연락이 왔고, 결국 최종적으로 딱 한 군데만 합격을 했다. 그래도 취직 준비 기간이 너무 길어지지 않아 다행이었다. 부트캠프를 수료하고 두 달 정도만에 취직했다.
Chapter 3. 지금부터는 견뎌낸 시간만큼이 곧 스펙
취직해서 어떤 일들을 하고 있나.
GIS(지리정보시스템)*를 기반으로 AI 연구를 하는 기업에서 데이터 분석가로 일하고 있다. 예를 들어 토지에서 생성되는 산출물을 예측하는 모델을 만든다고 하면 각 토지가 어떤 특징을 지녔는지 분류하는 기술이 먼저 필요하다. 나는 이때 필요한 데이터들을 전처리하고 분석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지리 공간을 바탕으로 활용가능한 모든 형태의 정보를 효과적으로 수집, 저장, 분석, 표현할 수 있도록 제공하는 플랫폼. 날씨나 야생동물 서식지 분석, 고고학, 도시계획 등 다양한 분야에 활용된다.
데이터 분석가 일은 잘 맞는 것 같나.
처음 6개월은 재밌기만 했다. 코딩을 처음 배울 때도 비슷했는데 매일 무언가를 알아가면서 이것저것 해보는 게 되게 흥미로웠다. 그러다가 ‘모르는 게 너무 많다’는 걸 깨닫게 되고 책임감도 생기니까 입사 6개월 이후부터는 고민이 많아지더라. ‘선배들이 하는 것처럼 내가 할 수 있을까’ 이게 내 요즘의 화두다.
앞으로 어떤 커리어를 쌓아갈 계획인가.
데이터 분석가라는 직무 안에서도 할 수 있는 업무가 워낙 다양하다. 경제석 분석을 할 수도 있고 스마트 팩토리에서 모아지는 센서 데이터를 분석할 수도 있다. 지금 일을 열심히 하면서 앞으로 어떤 분야를 전문화할지 구체화시켜나갈 계획이다.
코딩을 배우고 난 뒤 삶의 새로운 챕터를 열었다. 영현 님에게 코딩은 어떤 의미인가?
사실 특별하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재밌고 흥미로운 분야이긴 한데 그렇다고 ‘운명’이나 ‘평생’ 같은 말을 운운하면서까지 의미를 두고 있진 않다.
다만 코딩 덕분에 취직했다는 사실은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공기업을 준비하는 2년 동안 그리고 부트캠프를 들었던 6개월 동안 ‘취업 못하면 어떻게 하지’라는 고민을 내려놓은 적이 없었다. 코딩을 배우지 않았다면, 자격증을 따지 않았다면, 이렇게만 가정해봐도 아득해질 정도로 그때의 간절함이 잊혀지지 않는다. 나에게 코딩은 특별하진 않지만, 대단한 존재임엔 틀림없다.
마지막 질문이다. 영현 님에게 ‘큰일’은 무엇인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돈을 버는 것. 내 큰일을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하고 싶은 일’을 찾는 것과 그 일을 했을 때 누군가 돈을 주는 것.
아직은 두 조건 모두 언제 충족될 지 모르겠지만 급할 거 뭐 있나. 천천히 해 나갈 생각이다. |